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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etc. 2017. 2. 3. 13:07

꿈. 십대 초반 소녀쯤의 나와 여동생은 야외 테이블에서 젊은 여자 가정교사(?)를 마주보고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교사가 뒤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건물(그곳과 테이블 사이엔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서 누가 날 자꾸 쳐다보는데." 내가 그쪽을 보자 10층 안팎의 창문에서 이쪽을 내다보는 여자가 보였다. 상당히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의 눈빛이 나와 한동안 맞닿았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있는 창문가로 크고 색 고운 앵무새 같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여자는 풍성한 깃털뭉치에서 하나를 뽑더니 내게 키스를 불어 보내듯 그 깃털을 날렸다. 그러나 그때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깃털은 날 살짝 비껴 옆에 있던 동생 쪽으로 날아갔고, 내가 입고 있던 분홍빛의 부드럽고 얇고 풍성한 원피스만이 풍선처럼 바람을 머금고 한껏 부풀어 올랐다.

:

20100822

etc. 2010. 8. 22. 08:16


이곳에서 여행을 하기란 참 쉽다. - 적어도 내게는.
일단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가서 목적지로 검색 후 메일을 여남은 통 쓴다.
그러면 적어도 한두명은 긍정적 답을 주게 마련이다.
다음엔 미트파렌 사이트에 가서 출발일로 검색 후 문자나 전화를 몇 번 돌린다.
그러면 적어도 한명은 자리가 있다고 답하게 마련이다.
전날밤 가방에 대충 이것저것 챙겨넣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끗

이곳에서의 나날이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부터 2박3일은 또 출타할 예정이니 사실상 하루밖에 안 남았다고 봐야겠다.
괜히 아쉬운 마음에 어제는 포츠담과 알트 쾨페닉까지 찍어주고
오늘은 빈터펠트플라츠 거리시장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러 갔다. 다행히 어제부터 날씨도 끝내줬다.
포츠담은 왠지 고루할 거 같아서 여직 안 가고 있다가
그래도 베를린 6개월 체류하면서 상수시 한번 안 들르는 건 조금, 싶어서 걸음을 했는데
이런, 예상보다 좋네. 샬로텐부르크보다 훨씬 나은 듯.
녹지 사이로 건축물들이 적절하게 들어서 있어, 비싼 돈 내고 실내 구경하는 대신 산책만 해도 충분히 좋다.
나 역시 오랑제리 등은 건너뛰고 화랑만 둘러봤는데, 궁정 컬렉션이 흔히 그렇듯 대부분
하품나는 주제와 고루한 기법들이었지만,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가 그 사이에 끼어 있어 깜짝.
17세기의 장엄추와 19세기의 부르주아스러움, 이렇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샬로텐부르크 성과 달리
베르사유를 본따서 지어진 곳이다보니, 시각적 쾌감의 극치에 가까운 18세기 조각도 잔뜩 볼 수 있었다.
알트 쾨페닉은...전혀 베를린 같지 않았다! (칭찬이다)
만약 다시 이 도시에 체류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물과 가까운 지역에서 지내고 싶다.
변두리라도 상관없고. 힙한 예술가 지역 따위는 관심 없으니까.
 
이곳에 온 첫날 캐리어가 망가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는데 (덕분에 한밤의 택시라는 사치를)
기막힌 타이밍에 중고 캐리어가 싼값으로 나온걸 보았다. 어쩌다보니 함부뤀에서 직거래를 다해보겠네.

귀국하면 읽고 싶은 책들이 밀려 있다. 위시리스트를 살피다가 문득 어느 책 제목에 피식했다.
대학 친구 중, 새내기 시절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내가 (해맑은 표정으로) 검색중이던 책 제목이
<식인의 역사>였기 때문에 사년 내내 그 첫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후일에 고백한 이가 있었다.
왠지 다음번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이번에는 저 책을 지참하여 한결 참신한 인상을 주어야 할 것 같다.
- <능지처참>.

누가 말해줬는데, 뤼벡은 노르드제가 아니라 오스트제라고 한다.
아이고, 역시 후줌에 갔어야 했어.



메리 블랙의 목소리. 젊은 시절의 풀이파리 같은 청신함도 좋지만, 한숨이 결결이 배어나는 듯한 최근 목소리가 역시 더.




:

teufelsberg

etc. 2010. 7. 21. 07:40


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가진 베를린 안내서에 따르면:
베를린에서 가장 높은 해발 120미터(!)의 인공언덕. 전쟁의 잔해로 만들어졌다.

겸손한 높이를 자랑하다보니 정상에 올라가도 정상같지가 않은데-대체 정확히 어디가 정상이냐 싶은데,
연날리는 사람 일광욕하는 사람 사진찍는 사람 혼자 앉아 그림그리는 훈남 등 다양한 군상들이 있었지만,

진정한 매력은 다크사이드 오브 토이펠스베르크에.

철조망에 난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어 이래저래 길을 따라가다보면
분단시절 동독의 라디오 송수신을 교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골프공 모양의 전파탑(?)과 그에 딸린
여러 건물들의 폐허가 된 잔해가 남아 있다.
한낮에도 손전등이 있어야 제대로 둘러볼 수 있을만큼 캄캄한, 때론 바닥이 반이상 무너진 공간들이
온갖 허접쓰레기와 마구 자란 식물들, 그리고 베를린의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하게 사방을 도배한
그래피티 사이로 뻗어 있다.  
그야말로 황량하고, 살풍경하고, 버려진 장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할 만하다.
타헬레스도 여기에 비하면 너무 팬시해 보이는.

이곳을 소개한 글에서는 '구급상자 지참을 권장'이라고 겁주었지만, 난 치마바람으로도 잘 돌아다녔다.
하지만 손전등은 확실히 아쉬웠고.


2002년 말뫼에서의 woven hand 공연 부틀렉을 다운받았다.
5월에 그리도 기대하던 공연을 막상 보고는 어쩐지 아쉬워 이젠 DEE도 전성기는 지난건가 생각이 들었고
(게다가 바로 다음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바야흐로 절정기에 오른 조애너 뉴섬의 공연에 비교돼서 더욱)
그래서 한동안 이들의 음악은 봉인상태였지만 (겨울동안 지나치게 많이 듣긴 했다)
첫곡부터 바로 심장이 내려앉나 싶은 - 내게 익숙한 동요가 닥쳐왔고, 그래서 더욱 심정이 복잡해졌다.
2010년이 아니라 2002년 (적어도 2004년쯤에) 내가 이들 공연을 직접 볼수 있었으면 얼마나 감동했을까.

:

20100620

etc. 2010. 6. 20. 15:02

지난주는 한국 뺨치게 후텁지근했다.
이번주는 습도도 광도도 은근하니 적절했다.
다음주는 흐리고 축축할 예정이다.

슬슬 향수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다. 여름장마 후두둑 장대비조차 그립다.
제대로 낸 멸치 다시마 국물을 들이키고 싶다.

오늘 빈터펠트 플라츠 거리시장에서 사온 티라미수는 내 생애 최고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마스카포네는 순수 지방덩어리라더니
한국에서였다면 2조각은 족히 되었을 그 한조각을 다 먹고 나자 몇시간을 소화불량에 시달려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뜨끈한 된장국을 들이켰다. 처음엔 좀 심심하게 만들어야 데울수록 감칠맛이 난다.
독일 온 후, 혼자 살다보니 양이 많아 남겨둔 음식이 맛이 갈랑말랑해도 아깝다고 먹어치우거나
생소한 음식이 속에 안 받았던 때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된장국을 끓여먹으면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하지만 소화불량을 감수하고라도 매주 사먹고 싶은 티라미수였다.
한국에서의 싸구려 크림치즈 티라미수와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움. 질척할 정도로 들이부은 커피액.
시커멓게 아낌없이 뿌린 코코아가루. 거대한 쟁반에서 두부마냥 네모꼴로 푹푹 잘라낸 그 호쾌함이라니.

페어벨리너 플라츠 거리시장은 평일 점심대에 여는데다 딱 구청 앞이다. 그래선지 거진 식사류로 채워진다.
넥타이 부대들이 고즐렘, 팔라펠, 중국식 볶음국수, 블린, 쿠스쿠스, 브랏부어스트, 와플을 즐기고 있다.
매주 수요일 눈앞에 펼쳐지는 다국적 점심메뉴는 공무원들의 소소한 낙일지도.
나는 터키식재료 매대에서 말린 무화과를 사고(어학원 쉬는시간에 에너지 보충용 간식거리로 딱 좋다)
주로 채소와 치즈로 만든 다양한 페스토 혹은 크림(감자에 발라먹는다-독일에서 가장 저렴한 탄수화물은
빵도 쌀도 아니고 바로 감자다) 중 몇가지를 고른다.

요크슈트라세 거리시장은 거의 터키시장이라고 할 법하다. 상인도 고객도 과반수가 터키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여지껏 다른 시장에선 듣지 못했던 활발한 호객 소리가 들려온다.
-체리 1킬로에 2유로요! 2킬로는 3유로! -오이 4개에 1유로! 등등.
식사류는 거의 없고, 의류나 공산품도 조금은 있지만 식재료 특히 채소와 과일이 압도적.
대부분이 할인마트의 특가상품보다도 더 싸다.  
나는 터키인 할아버지에게 체리 1킬로를 산다. 서너번도 넘게 먹을 양이다.
요크슈트라세 s반 역에서 나오면 두갈래 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 거리시장이 있고
왼쪽으로 꺾으면 내가 베를린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묘지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작은 야외카페가 있고, 비스듬히 경사진 부지 가운데로 가로수길이 뻗어 있으며,
무덤 사이로는 일반적인 콘크리트 통로 대신에 잔디가 그대로 깔려 있다. 그사이로 잔디를 밟고 지나가
커다란 마로니에 아래 나무벤치에 앉아 비닐봉지에 든 체리를 꺼내먹으며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수요일 오후는 독일에서 내가 보낸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브레슬라우어 플라츠 거리시장은 프리드나우 s반 역에서 가깝지만 초행길엔 좀 찾기가 힘들다.
시장 자체는 그저그렇지만, 바로 앞에 맛있는 이탈리안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나는 말라가를 제일 좋아한다.
럼에 절인 건포도가 잔뜩 박힌 아이스크림이다.
그리고 프리드나우 역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는,
거리와 같은 눈높이의 플랫폼. 역전 야외카페에 앉은 사람들, 놀이터의 아이들이 시선을 맞출 만큼 가깝다.
조용하지만 적막하진 않은, 여유롭지만 돈냄새는 나지 않는, 적당히 낡았지만 퇴색하진 않은 집들이
그보다 더 높다란 나무들 사이로 햇빛 속에 고즈넉히 들어앉아 있다.

- 쓰고보니 이 네 곳 중 세 곳이 쉐네베르크다.
아무래도 내가 베를린에서 가장 그리워할 지역은 쉐네베르크가 될 것 같다.


:

20100615

etc. 2010. 6. 16. 05:25

초밥집 갔던 일요일 사진. (면상은 없음)
나랑 동갑인 스패니쉬 여자애가 찍어줌.
역시 그래픽디자이너의 감각이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보스턴에는 가본적 없습니다 없고요.

:

20100610

etc. 2010. 6. 11. 06:28

독일 온 이후로 가장 더운 날인 듯하다 - 그래봤자 4달도 안 되지만.

자툰티켓을 샀다. 독일인들은 하여간 축구에 관해선 한국인 저리가라 하게 유치한 듯.
월드컵 기간 마트 특가상품들의 손발 오그라드는 이름들 하며.
덕분에 기차여행 저렴하게 할 수 있으니 저야 고맙죠. 독일팀 티셔츠도 유용히 쓰겠습니다. 잠옷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방을 잘 고른 거 같다.
내 방은 3월까지 춥긴 했지만, 그 대신 이제 31도를 넘나드는 날씨에도 쾌적하다. 추우면 껴입을 수 있어도
덥다고 홀랑 벗고 있을 순 없자나. 건너편 집과의 거리가 10여미터 정도밖에 안되는 2층에서 말이다.
게다가 방에 라디에이터는 있어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없다고.
얼마전까지는 방에 햇빛이 안 들어서 오후만 되면 나가고 싶어 안절부절이었는데(최소한 안뜰에라도)
이젠 방에서 나가기가 싫다.
티어가르텐에 가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리 좋지도 않았다.
윌머스도르프-젤렌도르프엔 더 푸르고 더 조용하고 더 그림같은 녹지가 널렸고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쓸데없이 넓직하다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님.

룸메는 7월까지만 이 집에 있을 예정이다. 나는 한달 더 지낼 것이고.
집주인이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고, 룸메한테도 거슬리는 점이 많은데다, 월세도 싸다곤 할 수 없지만
위치 하나는 참 좋은 집이라. 룸메가 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그사이에 뮌헨에나 다녀올까. 혹은 함부르크도. 혹은 프랑크푸르트에 한번 더 갈 수 있을지도.


이런 날씨에는 기타연주곡이 최고. narciso yepes 들으며 멍때리기.


:

20100514

etc. 2010. 5. 14. 18:47

어제는 어학원 애들과 함께 한국음식점에 갔다.
갈비나 불고기는 없는, 분식집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분위기는 괜찮았다. (독일에선) 저렴한 편이고.
대부분 제육이나 쇠고기볶음을 먹었고 소주잔을 주문한 사람도 있었다. 반응도 괜찮았다.
하지만 닭볶음탕을 먹었던 이탈리아 여자애는 좀 고생했던 듯하다.
나로서는 닭볶음탕을 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부주의했던 것이다. 덜 맵게 해달라고 얘기할 것을.
생각보다 애들이 많이 와서, 주문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고 잔뜩 긴장 타고 있었는데
뭐 식당 아주머니가 나보다 독일어 훨씬 잘해서...
그러고 나선 바에 갔다. 직원들 차림새나 내부 꾸밈새나 전형적인 캐주얼 맥주바였는데
메뉴는 온갖 커피와 카카오를 비롯하여 의외로 팬시해서, 홍대 카페에 그대로 갖다놔도 될 듯했다.
난 러시안티를 시켰는데 콘피추어와 설탕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찻잔에 넣어져 나와서 살짝 실망.
물론 찻잔도 걍 맥주 마실때 쓰는 유리잔. 누가 멋없는 독일 아니랄까봐.

베를린 동물원은 입장료가 비싼 편이었지만 그값은 했다. 널찍하고 산뜻하고 냄새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동물들이 깨끗하고 활발해 보여 좋았다. 서울대공원의 침울한 유인원들이 생각났다.

알트 나치오날 갤러리는 온통 대리석으로 내장된 방들이 참 멋졌지만 그림에 있어선 게멜데갤러리보다 못했다.
 
라이헬트에 처음으로 가봤는데 지금까지 본 독일 마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품목 수준은 카이저와 비슷한데
훨씬 넓고 다채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조금 걸어야 하긴 하지만, 앞으론 주로 여기서 장봐야겠다.

팔케의 스타킹들을 온라인으로 사보았다. 어차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착용해볼 순 없다고 해서.
온라인 세일상품 중에서만(그래도 꽤 여러가지 디자인이 있었다) 무조건 가장 작은 사이즈로 주문했는데,
만족한다. 무늬랑 색상 다양하고 촉감 좋고 짱짱하고. 세일가로 전부 한 켤레에 2만원대였고
게다가 해외배송은 안되니, 지금 질러주는 게 바른 선택.
(독일은 유럽치곤 배송이 무척 빨라서, 2-3일이면 온다. DHL의 원조 국가답다.)
사포 같은 발꿈치를 자랑하는 나는 평소에 스타킹보다 면 타이즈를 훨씬 선호하는데, 아쉽게도 세일상품 중
타이즈는 거의 다 애저녁에 품절. 누가 실용적인 독일 아니랄까봐.
하긴 베를린은 이건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어중띤 상태니한동안은 이런 불투명 스타킹이 적절할 듯.
독일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고 최초로 양말 왼발 오른발 구분을 했던 곳이라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월포드 등
외국 브랜드에게 밀리고 있는 느낌?

반팔옷이 거의 없는 상태라 살짝 걱정했는데
(하지만 1킬로당 14유로인 구제옷가게를 찾았으니 괜찮다. 단품을 사도 웃옷 3-6유로에 치마 7-9유로, 게다가
해피아워에는 30퍼센트 할인. 안에 털을 댄, 내 조막손에 놀랍게 들어맞는(!) 예쁜 가죽장갑을 9유로로 샀다)  
이 상태로 여름이 오면 반팔옷 따윈 필요도 없을듯.

화요일엔 베를린 최대라는 두스만 서점에 가서 루퍼스 웨인라이트 무료공연 보고, 책구경도 하고,
목요일엔 비텐베르크 플라츠의 파머스마켓?에 가보고.
주말엔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카우치서핑으로 숙박은 무료! 하지만 떡이라도 좀 사다 드릴까.
지금 보눙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 베를린의 유일한 한국 떡집이 있더라는.


       

:

20100322

etc. 2010. 3. 23. 05:59


하이델베르거 플라츠에서 유독 아름답고 한적한, 뭔가 가슴이 아파올 정도인 하나우어 슈트라세를 따라가면
-나즈막한 나무 위의 오두막과 장난감같은 색색의 플라스틱 놀이터, 60년대쯤 지어졌을 3층보다 높지 않은 집들-
아이들 학교가 하나 나오고, 곧이어 쉐네베르크 묘지가 나온다. 여기엔 마를렌 디트리히가 잠들어 있다.
숙소에서 대로를 쭉 따라 1킬로미터로, 딱 산책하기 좋은 거리다.

그녀의 무덤은 구석에 있었고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마를렌'이라고만 적혀 있고 아예 성은 없다.
조그맣게 사진이 박혀 있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관광지에 위치하지 않아서인지 꽃도 없다.
그 옆옆에 있는 헬무트 뉴튼의 무덤도 수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화려하게 장식되고 깨끗하게 손질되었으며 방문객의 흔적도 많은 것은 일반인들의 무덤이었다.

묘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복을 입고 땅을 파거나 뭔가를 심는 직원 몇 외에는 노인들이었고,
그들도 대부분 손수레나 화분 등을 들고 와서 자신과 관련되었을 누군가의 무덤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가장 예쁘게 꾸며지고 사진이니 꽃이니 기념물이 빼곡한 것은 주로 어린아이들의 무덤이었다.
웃고 있는 어느 십대소년의 사진 옆에는 알록달록 색종이에 적힌 메시지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합정역 외국인묘지에 가본 사람이라면, 가장 인상적인 구역이 어린 나이에 경황없이 -때론 미처 이름도 없이-
죽은 목숨들의 초라하고 조그만 무덤이 모여 있는 곳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쉐네베르크 묘지에도 비슷하게 그런 무덤들이 모인 구역이 있다. 다만 이곳에는 나이대와는 상관없이
1939-45년 사이, 2차대전 중에 죽은 이들이 묻혀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물론 이름이 없는 무덤도 있다.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묘지를 즐겨찾는 이들은 '일반적 관념과 달리 밝고 평온한 곳'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정말로 밝고 평온한 묘지라 해도, 그 안에서 가장 묘지다운 곳은 역시 응달진 부분이다.
새까맣게 뭉친 흙덩이의 습습한 냄새를 맡노라면 새삼 여기가 무슨 테마파크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3월 중순부터 베를린은 이미 봄날이 완연하다. 카페 테라스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쇼핑몰 앞에 설치된, 옛날영화 속 fairground 마냥 조잡하지만 사랑스런 어트랙션들마다 아이들이 가득하다.
이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2유로나 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말았다.

쇼핑몰 앞 아시아마켓에서 두부와, s&b카레와, 시금치 같은데 길이와 굵기가 대략 3-4배인 채소를 사왔다.
뿌리가 포항초마냥 먹음직스레 발그스름하길래 참기름 넣고 무쳤더니 시금치 맛 그대로다.

돌아오는 길에 '우표 및 동전' 전문점이 있길래 얼마만에 보는 거냐 하고 반가워 가까이 가봤더니
4월 6일까지만 연다고 적혀 있다. 이런.


:

냄새들

etc. 2009. 9. 11. 19:39


커피점에서는 주로 카푸치노를 시키는데,
식어가는 카푸치노에서 건강한 여자의 생식기 냄새를 맡곤 한다.
원두커피와 우유거품이 섞이면 그처럼 적당히 짭조름한 냄새가 나는 걸까.
아니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께름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내게는 생리혈보다도 더 尋常한 냄새다.


욕실 곰팡이를 제거하느라 락스를 잠시 맨손으로 만졌더니
몇 시간이나 손가락에서 정액과 비슷한 특유의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아무거나 향수를 집어서 손가락에다 묻혔다. 켈리 칼레쉬다.
락스 냄새는 가라앉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향수 배리어까지 뚫고(!) 손가락을 재점유했다.
오드 투알렛이 아니라 오드 퍼퓸을 묻혔어야 했나?

본래 정액이란 게 남성의 몸 깊은 곳에서 분출된 순간 여성의 몸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디자인된 물질이니
공기 중에 머무를 때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유를 쏟아본 사람은 그 냄새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알 것이다.
어제의 경우 우유라곤 1/3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은 밀크 커피였음에도
부엌에서는 밤새 그 냄새가 진동했다. (가엾은 커피는 처음부터 존재감도 없었다)

사전에 비린내라는 말을 쳤더니 물비린내. 피비린내. 쇠비린내. 젖비린내. 이들이 연이어 나왔다.
향수의 세계에서 물비린내는 아주 흔하고(자매품으로 오이비린내가 있다)
쇠비린내와 피비린내도 없지는 않지만 가끔은 존재한다.
내가 가진 향수 중에는 대즐링 실버와 윈터 델리스가
전자와 후자의 예로 종종 거론된다.
그런데 젖비린내는? 잘 모르겠다.
밀크티(오스망트 위낭)나 요구르트 냄새는 종종 나오지만 그건 다르니까.
향수가 섹스어필을 위한 도구라는 도식적인 전제를 가져온다면
젖냄새 나는 여자-수유중인 여자-생식기능이 없는(정지된) 여자-성적 매력이 없는 여자
라는 유사 진화생물학적 궤변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게 들리긴 해도 전혀 설득력은 없다.

(그렇다면 쇠비린내와 피비린내는 섹스어필한가? 분명히 가끔은 그럴 수도 있다.
더 논하려 들면 변태성의 영역에 들어서게 될 것 같으니 넘어가자.)


얼마전 방 베르 빈티지 미니를 구했다.
이걸 국내에서 그것도 이처럼 저렴하게 살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
첫향은 크리스탈보다도 더 쌔하고 짙푸른데
금새 그 냄새의 결이 갈라지면서 강한 자스민향과 약간의 장미향이 흘러나온다.
막향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도 긴 편.
쨍쨍한 여름 낮에도 꽤 어울려서, 얇고 헐렁한 원피스 한 벌만 걸치고 나갈 때 가슴팍에 찍어보기도 했다.
진하면서도 여름에 쓸 수 있는 향수는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끼게 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대즐링 실버를 한번 손목에 발라보았는데
내게는 금속성이라기보다 지하실 곰팡이 냄새처럼 느껴진다.



이런 음악과 잘 어울리는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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