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0

etc. 2010. 6. 20. 15:02

지난주는 한국 뺨치게 후텁지근했다.
이번주는 습도도 광도도 은근하니 적절했다.
다음주는 흐리고 축축할 예정이다.

슬슬 향수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다. 여름장마 후두둑 장대비조차 그립다.
제대로 낸 멸치 다시마 국물을 들이키고 싶다.

오늘 빈터펠트 플라츠 거리시장에서 사온 티라미수는 내 생애 최고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마스카포네는 순수 지방덩어리라더니
한국에서였다면 2조각은 족히 되었을 그 한조각을 다 먹고 나자 몇시간을 소화불량에 시달려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뜨끈한 된장국을 들이켰다. 처음엔 좀 심심하게 만들어야 데울수록 감칠맛이 난다.
독일 온 후, 혼자 살다보니 양이 많아 남겨둔 음식이 맛이 갈랑말랑해도 아깝다고 먹어치우거나
생소한 음식이 속에 안 받았던 때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된장국을 끓여먹으면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하지만 소화불량을 감수하고라도 매주 사먹고 싶은 티라미수였다.
한국에서의 싸구려 크림치즈 티라미수와는 완전히 다른 부드러움. 질척할 정도로 들이부은 커피액.
시커멓게 아낌없이 뿌린 코코아가루. 거대한 쟁반에서 두부마냥 네모꼴로 푹푹 잘라낸 그 호쾌함이라니.

페어벨리너 플라츠 거리시장은 평일 점심대에 여는데다 딱 구청 앞이다. 그래선지 거진 식사류로 채워진다.
넥타이 부대들이 고즐렘, 팔라펠, 중국식 볶음국수, 블린, 쿠스쿠스, 브랏부어스트, 와플을 즐기고 있다.
매주 수요일 눈앞에 펼쳐지는 다국적 점심메뉴는 공무원들의 소소한 낙일지도.
나는 터키식재료 매대에서 말린 무화과를 사고(어학원 쉬는시간에 에너지 보충용 간식거리로 딱 좋다)
주로 채소와 치즈로 만든 다양한 페스토 혹은 크림(감자에 발라먹는다-독일에서 가장 저렴한 탄수화물은
빵도 쌀도 아니고 바로 감자다) 중 몇가지를 고른다.

요크슈트라세 거리시장은 거의 터키시장이라고 할 법하다. 상인도 고객도 과반수가 터키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여지껏 다른 시장에선 듣지 못했던 활발한 호객 소리가 들려온다.
-체리 1킬로에 2유로요! 2킬로는 3유로! -오이 4개에 1유로! 등등.
식사류는 거의 없고, 의류나 공산품도 조금은 있지만 식재료 특히 채소와 과일이 압도적.
대부분이 할인마트의 특가상품보다도 더 싸다.  
나는 터키인 할아버지에게 체리 1킬로를 산다. 서너번도 넘게 먹을 양이다.
요크슈트라세 s반 역에서 나오면 두갈래 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 거리시장이 있고
왼쪽으로 꺾으면 내가 베를린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묘지가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작은 야외카페가 있고, 비스듬히 경사진 부지 가운데로 가로수길이 뻗어 있으며,
무덤 사이로는 일반적인 콘크리트 통로 대신에 잔디가 그대로 깔려 있다. 그사이로 잔디를 밟고 지나가
커다란 마로니에 아래 나무벤치에 앉아 비닐봉지에 든 체리를 꺼내먹으며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수요일 오후는 독일에서 내가 보낸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브레슬라우어 플라츠 거리시장은 프리드나우 s반 역에서 가깝지만 초행길엔 좀 찾기가 힘들다.
시장 자체는 그저그렇지만, 바로 앞에 맛있는 이탈리안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나는 말라가를 제일 좋아한다.
럼에 절인 건포도가 잔뜩 박힌 아이스크림이다.
그리고 프리드나우 역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지평선과 평행을 이루는,
거리와 같은 눈높이의 플랫폼. 역전 야외카페에 앉은 사람들, 놀이터의 아이들이 시선을 맞출 만큼 가깝다.
조용하지만 적막하진 않은, 여유롭지만 돈냄새는 나지 않는, 적당히 낡았지만 퇴색하진 않은 집들이
그보다 더 높다란 나무들 사이로 햇빛 속에 고즈넉히 들어앉아 있다.

- 쓰고보니 이 네 곳 중 세 곳이 쉐네베르크다.
아무래도 내가 베를린에서 가장 그리워할 지역은 쉐네베르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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