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2

etc. 2010. 3. 23. 05:59


하이델베르거 플라츠에서 유독 아름답고 한적한, 뭔가 가슴이 아파올 정도인 하나우어 슈트라세를 따라가면
-나즈막한 나무 위의 오두막과 장난감같은 색색의 플라스틱 놀이터, 60년대쯤 지어졌을 3층보다 높지 않은 집들-
아이들 학교가 하나 나오고, 곧이어 쉐네베르크 묘지가 나온다. 여기엔 마를렌 디트리히가 잠들어 있다.
숙소에서 대로를 쭉 따라 1킬로미터로, 딱 산책하기 좋은 거리다.

그녀의 무덤은 구석에 있었고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마를렌'이라고만 적혀 있고 아예 성은 없다.
조그맣게 사진이 박혀 있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관광지에 위치하지 않아서인지 꽃도 없다.
그 옆옆에 있는 헬무트 뉴튼의 무덤도 수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화려하게 장식되고 깨끗하게 손질되었으며 방문객의 흔적도 많은 것은 일반인들의 무덤이었다.

묘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복을 입고 땅을 파거나 뭔가를 심는 직원 몇 외에는 노인들이었고,
그들도 대부분 손수레나 화분 등을 들고 와서 자신과 관련되었을 누군가의 무덤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가장 예쁘게 꾸며지고 사진이니 꽃이니 기념물이 빼곡한 것은 주로 어린아이들의 무덤이었다.
웃고 있는 어느 십대소년의 사진 옆에는 알록달록 색종이에 적힌 메시지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합정역 외국인묘지에 가본 사람이라면, 가장 인상적인 구역이 어린 나이에 경황없이 -때론 미처 이름도 없이-
죽은 목숨들의 초라하고 조그만 무덤이 모여 있는 곳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쉐네베르크 묘지에도 비슷하게 그런 무덤들이 모인 구역이 있다. 다만 이곳에는 나이대와는 상관없이
1939-45년 사이, 2차대전 중에 죽은 이들이 묻혀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물론 이름이 없는 무덤도 있다.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묘지를 즐겨찾는 이들은 '일반적 관념과 달리 밝고 평온한 곳'이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정말로 밝고 평온한 묘지라 해도, 그 안에서 가장 묘지다운 곳은 역시 응달진 부분이다.
새까맣게 뭉친 흙덩이의 습습한 냄새를 맡노라면 새삼 여기가 무슨 테마파크가 아니라 죽음의 장소임을 실감하는 것이다.  


3월 중순부터 베를린은 이미 봄날이 완연하다. 카페 테라스마다 사람들이 넘쳐나고,
쇼핑몰 앞에 설치된, 옛날영화 속 fairground 마냥 조잡하지만 사랑스런 어트랙션들마다 아이들이 가득하다.
이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2유로나 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말았다.

쇼핑몰 앞 아시아마켓에서 두부와, s&b카레와, 시금치 같은데 길이와 굵기가 대략 3-4배인 채소를 사왔다.
뿌리가 포항초마냥 먹음직스레 발그스름하길래 참기름 넣고 무쳤더니 시금치 맛 그대로다.

돌아오는 길에 '우표 및 동전' 전문점이 있길래 얼마만에 보는 거냐 하고 반가워 가까이 가봤더니
4월 6일까지만 연다고 적혀 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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