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들

etc. 2009. 9. 11. 19:39


커피점에서는 주로 카푸치노를 시키는데,
식어가는 카푸치노에서 건강한 여자의 생식기 냄새를 맡곤 한다.
원두커피와 우유거품이 섞이면 그처럼 적당히 짭조름한 냄새가 나는 걸까.
아니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께름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내게는 생리혈보다도 더 尋常한 냄새다.


욕실 곰팡이를 제거하느라 락스를 잠시 맨손으로 만졌더니
몇 시간이나 손가락에서 정액과 비슷한 특유의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다.
아무거나 향수를 집어서 손가락에다 묻혔다. 켈리 칼레쉬다.
락스 냄새는 가라앉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향수 배리어까지 뚫고(!) 손가락을 재점유했다.
오드 투알렛이 아니라 오드 퍼퓸을 묻혔어야 했나?

본래 정액이란 게 남성의 몸 깊은 곳에서 분출된 순간 여성의 몸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디자인된 물질이니
공기 중에 머무를 때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유를 쏟아본 사람은 그 냄새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알 것이다.
어제의 경우 우유라곤 1/3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은 밀크 커피였음에도
부엌에서는 밤새 그 냄새가 진동했다. (가엾은 커피는 처음부터 존재감도 없었다)

사전에 비린내라는 말을 쳤더니 물비린내. 피비린내. 쇠비린내. 젖비린내. 이들이 연이어 나왔다.
향수의 세계에서 물비린내는 아주 흔하고(자매품으로 오이비린내가 있다)
쇠비린내와 피비린내도 없지는 않지만 가끔은 존재한다.
내가 가진 향수 중에는 대즐링 실버와 윈터 델리스가
전자와 후자의 예로 종종 거론된다.
그런데 젖비린내는? 잘 모르겠다.
밀크티(오스망트 위낭)나 요구르트 냄새는 종종 나오지만 그건 다르니까.
향수가 섹스어필을 위한 도구라는 도식적인 전제를 가져온다면
젖냄새 나는 여자-수유중인 여자-생식기능이 없는(정지된) 여자-성적 매력이 없는 여자
라는 유사 진화생물학적 궤변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게 들리긴 해도 전혀 설득력은 없다.

(그렇다면 쇠비린내와 피비린내는 섹스어필한가? 분명히 가끔은 그럴 수도 있다.
더 논하려 들면 변태성의 영역에 들어서게 될 것 같으니 넘어가자.)


얼마전 방 베르 빈티지 미니를 구했다.
이걸 국내에서 그것도 이처럼 저렴하게 살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
첫향은 크리스탈보다도 더 쌔하고 짙푸른데
금새 그 냄새의 결이 갈라지면서 강한 자스민향과 약간의 장미향이 흘러나온다.
막향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도 긴 편.
쨍쨍한 여름 낮에도 꽤 어울려서, 얇고 헐렁한 원피스 한 벌만 걸치고 나갈 때 가슴팍에 찍어보기도 했다.
진하면서도 여름에 쓸 수 있는 향수는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도 아끼게 될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대즐링 실버를 한번 손목에 발라보았는데
내게는 금속성이라기보다 지하실 곰팡이 냄새처럼 느껴진다.



이런 음악과 잘 어울리는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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